김천 청암사승가대학 정진 현장

부처님오신날을 한 달 여 앞둔 지난 4월28일 열공 모드에 빠져있는 김천 청암사승가대학 학인 스님들을 만나봤다. 사진은 대강백 지형스님으로부터 중국 역대 고승들의 법어집인 치문경훈 강의를 듣고 있는 모습.

30년 이상 후학 양성 매진해온
지형스님 치문 강의 초집중 열공  
“불교 용어 극미(색법 최소단위)
과학 용어로 바꿀 수 있나요”
토론 땐 심도 있는 질문 쏟아져
오후부터 전통사찰음식 강의
태극권 수련하며 심신 다져 

부처님의 삶과 가르침이 지금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불법승 삼보 가운데 하나인 승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불기 2562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불법(佛法)을 오롯하게 이어가기 위해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는 김천 청암사승가대학 학인 스님들을 만나봤다. 

지난 4월28일 김천 청암사승가대학 육화료 대방. 학인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정갈하고 아름다운 도량을 가득 메웠다. 보통 오전9시 업무를 시작하는 세속과 달리, 이미 오전7시 반부터 첫 강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전통강백으로부터 문강(聞講), 치문경훈’ 수업이다. 그 이름만 들어도 존경심이 샘솟는 대강백 지형스님 강의다.

치문(緇門)은 치문경훈(緇門警訓)의 약칭으로 후학들을 경책하는 중국 역대 고승들의 법어집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 공민왕 때 태고보우 스님이 중국에서 처음 가져온 책이다. 이후  1695(숙종 21)년 백암성총스님이 원문에 주(註)를 달고 출판한 뒤 불교 강원 교과과정으로 편입됐다. 특히 정통 한문 실력을 고양시킬 수 있는 교재로 손색이 없어 예로부터 1학년들은 일 년 내내 치문 공부에 전념하고 있다. 지금도 승가대학 한문불전 과목 필수교재이다. 

승가대학장 지형스님 강의는 뭔가 달라도 달랐다. 한문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스님들에게 난공불락의 대표 과목일 수 있지만, 30년 이상 경학 연찬과 후학양성에 매진해온 강사 스님만 곁에 있으면 문제없다. 단순히 원문을 해석하고 외우는 게 아니라, 목소리며 행동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깊은 수행의 향기가 고스란히 학인 스님들에게 전해졌다.

작은 앉은뱅이책상 하나에 의지해 공부하는 것이 불편할 법도 한데 단정한 자세엔 흐트러짐이 없다. 노트 여러 장에 걸쳐 빼곡하게 미리 적어온 원문 속에는 한 자라도 더 배우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강의 하이라이트는 전체 대중이 한목소리로 이날 배운 경구를 소리 내어 읽는 시간. 봄빛으로 물든 도량의 나무와 꽃들까지 스님들 독경을 귀 담아 듣는 듯 했다. 

오전9시10분 극락전 만월루에서는 3학년들을 대상으로 한 토론식 수업이 한창이다. 이번 수업은 존재일반을 철저히 법들로 분해해고 해체해 설명한 아비달마의 이해. 아비달마란 불교 경전을 경(經), 율(律), 논(論) 3장으로 나눌 때 논장(論藏)을 총칭하는 말이다. 수업은 인간의 심신을 5위75법 등으로 분류한 일체법 대해 강의를 듣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깊은 산중이지만 여느 대학 강의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승가기본교육기관 최초로 스마트 캠퍼스 구축에 나선 청암사는 사중 어느 곳에서나 무선인터넷 접속이 가능해 원하는 장소에서 스마트기기로 공부할 수 있다. 난해하고 복잡한 내용을 공부하는 이날 강의 시간에도 두꺼운 교재는 없고 아이패드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커다란 원탁에 둥글게 모여 앉은 학인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강사 스님과 격이 없이 질문을 주고받았다.

“색법의 최소 단위 극미(極微)를 현대 과학적 용어로 바꾼다거나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소승과 대승불교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 인가요.” 강의 보다 질문 받고 답하는 시간이 더 비중 있게 다뤄졌다.

교육원 교과목 개편에 따른 토론식 수업현장.

수업에 참여한 스님들도 토론 수업이 앞으로 전법 포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3학년 덕인스님은 “포교가 말처럼 쉽지 않은데 토론을 통해 모르는 부분은 강사 스님이 채워주고 내 생각을 키우는 기회여서 큰 도움이 된다”며 “졸업 후에도 승가대학에서 쌓은 내공을 살려 지역 포교에 매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곳 청암사승가대학에서는 앉아서만 하는 공부가 다가 아니었다. 점심공양 이후부터는 동국대 전통사찰음식연구소 강사 해명스님으로부터 배우는 전통사찰음식 수업과 청암사승가대학 태극권 교수사 도국스님의 힐링 태극권 수련이 진행됐다. 도마질 한 번에 대중공양의 중요성을 배우고, 청량한 봄바람이 부는 도량 한 복판에서 움직이는 선으로 불리는 태극권 수련을 하며 몸과 마음을 튼튼히 했다.  

진정한 홀로서기의 길을 선택한 학인 스님들의 사연도 궁금했다.

이제 곧 정식 비구니계를 받게 될 4학년 명정스님은 피상적인 불교 공부 말고 정법을 제대로 알아 많은 이들에게 회향하고 싶어 출가의 길을 걷게 됐다. 세속 나이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맑은 얼굴을 한 스님은 40대 늦깎이 출가자라고 한다. 그러나 불교를 제대로 공부하려는 의지만큼은 그 누구보다 강해보였다.

명정스님은 “‘선 것은 익게 하고 익은 것은 설게 하라’는 가르침을 배우는 곳이 바로 승가대학”이라며 “바깥세상에서 업의 물결 속에 욕망에 따라 살아가던 습관은 설게 하고, 지혜를 닦아 공부를 익숙하게 만드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글자만 배우는 게 아니라 강사 스님과 선배 스님들로부터 수행의 깊이를 함께 배우는 최상의 수행 공간”이라며 “요즘 인터넷만 들어가도 텍스트가 넘쳐나지만 이런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값진 가르침을 배운다”고 말했다.

1학년 혜겸스님도 수행을 통해 온전한 자신을 찾기 위해 출가한 것이라고 말한다. “속인 시절 불자는 아니었는데, 불현 듯 인생의 알맹이가 없는 느낌이 일어 평생 올곧은 수행자로 살겠다는 결심으로 출가하게 됐다”는 스님은 “앞으로 초기불교 경전에 담긴 부처님의 원음을 철저하게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청암사 주지 상덕스님은 “기본교육기관으로서 대중화합의 가르침에 주안점을 두고 학인들을 지도하고 있다”며 “승가에서 내려오는 전통은 분명히 익히고 사회학문을 방편으로 배울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며 많은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다. 출가자 급감시대라곤 하지만 학인들의 치열한 발심정진과 훌륭한 스님들의 가르침 속에 한국불교의 내일도 무르익고 있었다.   

김천 청암사·승가대학은?

일찌감치 ‘불교 전문강원’으로 명성 자자
그 전통 고스란히 지금도 후학양성 매진

청암사는 김천 증산면 평촌리 불영산(佛靈山)의 깊디깊은 계곡 아래 터를 잡은 사찰이다. 조계종 제8교구본사 직지사 말사이다. 신라 헌안왕3년(859) 도선국사가 건립한 고찰인 청암사는 절 자체가 아름다운 곳이다. 대웅전과 범종각, 진영각 등의 전각이 위치해 있고 그 중 육화료(六和寮)는 승가대학의 중심인 대방채로 쓰이고 있다. 또한 언덕 위에는 과거 인현왕후가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궁궐 건축 양식의 극락전(極樂殿)과 왕후의 복위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보광전(寶光殿)이 있다. 보광전 내부에는 한국 사찰에서는 만나기 힘든 42개의 손을 지닌 관음상이 있어 참배객들의 불심을 자극한다.

인현왕후와 인연이 깊은 청암사는 지금도 산사음식 및 다도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운영하며 그가 즐겨먹었던 산사음식과 차를 통해 자본주의 음식문화를 반성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이곳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비구니 기본교육기관인 청암사승가대학이 있다. 과거 전국의 내로라하는 학승들이 강론(講論)을 펼쳤던 유서 깊은 도량으로 그 공부 전통은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임진왜란 후 한국불교 재건에 큰 업적을 남긴 벽암각성스님의 강맥을 이은 대화엄 종장 모운진언스님(1622~1703)이 청암사를 전문 강원으로 개설한 것이 청암사승가대학 효시이다. 이후 허정혜원스님이 강교(講敎)와 설선(設禪)의 꽃을 피웠으며, 1711년 경 모운진언, 보광원민스님의 법맥을 이은 대강백 회암정혜스님(1685~1741)이 강원을 더욱 융창 발전시켰다. 당시 조선을 대표하는 강원으로 명성을 드날렸으며 승속의 추앙을 받았다. 높은 학풍은 그 후로도 면면히 이어져 근대 고봉스님(1901∼1967)을 거쳐 우룡스님, 고산스님으로 이어졌다.      

고고한 학풍과 수행의 향기가 고스란히 비구니 스님들에게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청암사승가대학장 의정지형스님과 의진상덕스님의 남다른 원력 덕분이다. 1987년 3월25일 청암사비구니승가대학을 설립하고 30여 년에 걸쳐 전 도량 및 부속건물을 보수 및 신축했다. 2007년에는 비구니 승단에 큰 획을 긋는 교육전문기관인 청암사율학승가대학원을 개원했다. 부처님 가르침을 잇는 후학양성에 원대한 발원을 세운 두 스님 덕분에 전통강원의 맥은 지금까지 살아 숨 쉬고 있다.

동국대 전통사찰음식연구소 강사 해명스님의 사찰음식 수업 모습.
태극권 교수사 도국스님의 힐링 태극권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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