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스님 취임부터 사퇴까지

제35대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이 사퇴의 뜻을 표했다. 취임한 지 10개월 만인 조기퇴진이다. 사실, 불운의 씨앗은 선거 출마 즈음부터 싹텄다. 은처자 의혹 등 자신을 향한 의심의 시선을 끝내 씻어내지 못했다.

▶출사표

지난해 9월 설정스님이 출사표를 던지면서 안게 된 3대 의혹은 △서울대 허위학력 △고건축박물관 사유재산 △숨겨둔 처와 자식이 있다는 것이었다. 방통대를 나왔는데 서울대를 나왔다고 한 부분은 신속한 참회로 진화했다. 고건축박물관의 경우 종단 차원의 의혹규명 작업을 통해 설정스님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출가수행자로서 여성과의 간음으로 딸까지 낳았다’는 주장은 사실 여부를 떠나 ‘카더라’만으로도 파괴력이 너무 셌다.

그래도 출발은 희망찼다. 10월12일 신임 총무원장선거에서 상대후보들을 넉넉한 표차로 따돌리며 당선됐다. 당선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신상과 관련된 의혹들을 조속히 해소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완승의 분위기에 흐려졌다. 11월1일 취임법회는 성대했는데, 올해 신년기자회견에서도 이 질문이 나왔다. 스님은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분명히 해소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렇게 시간은 흘렀다.

여하튼 봄은 왔다. 종단 바깥의 단체들이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했으나 크게 주목은 받지 못하던 시점이었다. 그러다 MBC PD수첩이 5월1일 폭탄을 터뜨렸다. 지상파 방송이 관련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자 의혹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이를 발판으로 ‘해종(害宗)’언론을 비롯해 이른바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 등은 집회를 계속 열어 이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전 불국사 주지 설조스님의 단식도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했다.

▶교권자주수호위 출범

물론 상반기만 해도 ‘퇴임’은 입에서 꺼내기 어려운 단어였다. 반전의 계기가 마련되기도 했다. 진제 종정예하의 교시로 6월11일 교권자주수호위원회가 출범했고, 결백을 자신했던 설정스님은 위원회에 전권을 위임하고 판단을 맡기겠다며 각오를 드러냈다. 이때만 해도 빛은 보였다. 미국에 거주하는 의혹당사자의 친모인 김 모 씨가 나타나 “자신의 딸은 약 30년 전 어느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해 낳은 자식이고, 설정스님의 도움으로 스님의 가족에게 아이를 입양시킨 것일 뿐 설정스님의 딸이 아니다”라라고 항변했다. 적어도 종단 내부에선 그녀를 믿어주는 기류였다.

하지만 유전자검사로 사태를 단박에 해결할 결정적 열쇠를 쥔 의혹당사자는 여전히 찾지 못한 상태였다. 뇌관은 제거되지 않았고 사상 최악의 폭염 속에서 희망은 녹아내렸다. 김 씨의 주장을 뒤집은 7월23일 하와이 무량사 도현스님의 기자회견은 불자들의 정서를 어지럽혔다. 무엇보다 이를 기화로 미디어들이 대거 조계종에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이와 함께 물밑에서 벌어진 여러 일들로 인해 원로 및 중진 스님들과 설정스님 사이의 신뢰는 금이 갔다. 그러는 사이 불교의 사회적 위상은 덩달아 흔들렸고 종무원들의 피로감은 한계에 이르렀다.

설정스님이 8월21일 사퇴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조기퇴진' 감지…

조기퇴진은 지난 7월27일 긴급기자회견에서 이미 감지됐었다. 설정스님은 이날 "저와 관련된 일로 종도들과 국민들에게 실망을 끼쳐드린데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종단 안정과 화합을 위한 길을 모색해 진퇴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는 8월1일 총무원장 스님을 면담하고 나서 “총무원장 스님께서는 8월16일 개최하는 임시중앙종회 이전에 용퇴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전했다.

8월13일 설정스님은 또 다시 긴급하게 기자회견을 열었다. “종단 개혁의 초석만은 마련하겠다”며 ‘12월31일 사임’ 카드로 또 다른 길을 열려 했다. 그러나 교구본사 및 중앙종회와의 소통은 완전히 끊어졌다. 사실상 ‘명예로운 퇴진’을 요구한 8월8일 종정예하의 두 번째 교시가 이미 결정타였다.

8월16일이 운명의 날이었다. 종단 사상 최초로 중앙종회에서 ‘총무원장 불신임(해임)’ 안이 가결됐다. 전날까지만 해도 긴가민가했다. 막상 투표함을 개봉하자 불신과 불통이 아주 오랫동안 익고 있었음이 확인됐다. 설정스님은 총무원장 취임 직전까지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으로서 굳건히 산중을 지켰다. 8월21일 스님은 짧았던 서울생활을 마치고 다시 산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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