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안성 서운산 석남사
안성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이 서운산이다.
서운산 남쪽 기슭에 청룡사가, 그 너머 동북쪽 기슭에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 말사인 석남사가 있다.
313번 지방도로를 타고 배티고개를 넘어 호젓한 산길로 접어 들어 10여 분 올라가면, 세월의 무게와 역사의 기품을 간직한 천년 고찰 석남사가 푸근하고도 웅자한 자태를 드러낸다. 큰 절은 아니지만 곱게 매만진 흔적에 서리서리 정성이 녹아 있다.
서운산의 한 기슭에 조용히 자리한 석남사는 신라 문무왕 때 창건된 후 수많은 승려들이 머문 거찰이었다고 한다.
산정에 기댄 대웅전과 바로 아래에 영산전이 있는데, 가람 전체의 무게가 이 두 전각에 육중하게 실려 있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 양 옆은 손끝에서 묻어난 정성으로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라는 시구를 연상케 한다. 봄이면 철쭉이 환히 길을 밝힌다.
석남사는 신라 문무왕 20년(680)에 당대의 고승 석선(奭善)이 개산하면서 창건했다. 그 후 문성왕 18년(856) 가지산문의 2조인 염거국사(廉居國師)가 주석하면서 중수했고, 고려 광종의 아들 혜거국사(慧炬國師)가 크게 중건하는 등 이름 높은 스님들이 석남사를 거쳐갔다. 따라서 이들 스승을 흠모하는 수많은 제자들이 찾아들어 수행지도를 받았으니, 석남사는 당시 수백인의 참선승이 머물렀던 수행도량이었다.
이에 세조는 석남사의 전통을 살리고 수행도량의 면모를 지켜나가도록 당부했다. "석남사에 적을 둔 모든 승려의 사역을 면제하니 수도에만 전념토록 하라"는 친서교지(親書敎旨)를 내렸던 것이다. 임진왜란 때 병화(兵火)를 당하고 영조 때 해원선사(海源禪師)가 중수했으나 본래의 절 모습을 되찾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대웅전과 영산전뿐이지만, 영산전(보물 제823호)은 조선 초기 건물의 특징 양식을 손색없이 지니고 있어 당시의 절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석남사에는 현재 영산전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8호인 대웅전, 향토유적 제11호인 고려시대 오층석탑 2기가 있고, 절 입구에 향토유적 제28호인 석종형 부도 2기가 있다. 절 왼쪽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9호로 지정된 마애여래불상이 있어 만나볼 만하다.
석남사는 계단식으로 3단의 축대를 쌓아 대웅전과 영산전, 한 채뿐인 요사채가 있지만 넓은 공터가 많다. 삼면을 산줄기가 에워싸 다소 답답한 감이 없지 않으나 앞골이 트이고 계곡물이 절 앞으로 흘러 시원스럽다. 석남계곡은 특히 승방골·주왕골·험한골·대밭골·방아골 등 열두 굽이가 있으며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이 앞을 가린다. 그 뒤 산 정상으로는 서운산성이 둘러쳐져 있다.